결혼 20주년 선물 대신 사망 선고…무너진 남편이 병원에 먼저 찾아가 "6명에게 장기기증 하겠다" 꺼낸 속사정
기증자 김옥희 씨와 남편 박천식 씨 /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나 없으면 복지관 어르신들 밥은 누가 챙겨요"
작년에 남편이 제주도라도 다녀오자며 등 떠밀 때도 아내는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평생 남 챙기는 게 버릇이었던 사람이라 고향 노인복지회관 어르신들 끼니 굶는 게 더 걱정이었던 모양입니다.
남편은 그때 좀 더 강하게 고집을 부려볼 걸 그랬다며 두고두고 가슴을 쳤습니다. 그게 아내와 함께 떠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는 걸 알았으면 어떻게든 데리고 갔을 텐데 말입니다.
누구보다 밝고 서글서글했던 60대 여성 김옥희 씨의 이야기입니다.
21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김옥희(68) 씨는 지난달 15일 전남대병원에서 뇌사 장기기증으로 6명에게 새 생명을 전했습니다.
살아생전 김옥희 씨는 평소 집 앞마당에 꽃 심는 걸 좋아하고 요리 솜씨가 좋아 주변에 베풀기 좋아하던 평범한 이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9일, 여느 때처럼 복지관에서 열심히 일하던 김옥희 씨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다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까지 받았지만 아내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뇌사 판정 앞에 남편 박천식 씨의 세상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슬픔을 추스를 시간도 없었을 텐데 남편은 눈물을 훔치며 병원 의료진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의 장기기증을 진행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기가 막힌 현실 앞에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먼저 했을까 싶지만 사실 이건 부부가 10년 전부터 미리 약속해 둔 일이었습니다.
살아생전 "우리 마지막 순간이 오면 허무하게 가지 말고 좋은 일 하고 가자"라고 서로 몇 번이나 다짐하며 이미 10여년 전 기증 희망 등록을 해두었던 겁니다.
기증자 김옥희 씨 /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남편의 눈물 어린 동의로 김옥희 씨는 양쪽 신장과 폐, 간장, 안구를 기증해 6명의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냈습니다.
게다가 뼈와 연골, 혈관 같은 인체조직까지 전부 아낌없이 나누면서 무려 100여 명의 환자들에게 다시 걸을 수 있는 희망을 선물했습니다.
평생 남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짓던 손으로 마지막 순간에는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쥐여준 셈입니다.
마음이 더 먹먹해지는 건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14일이 두 사람의 결혼 20주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짐을 정리하다가 먼지 쌓인 20년 전 결혼 앨범을 홀로 펼쳐 들었습니다. 사진 속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평생 고생만 시킨 것 같고 제대로 된 여행 한번 같이 가보지 못한 게 가슴에 맺혀 멍하니 앨범만 만졌습니다.
"다니엘라(세례명), 사는 동안 너무 고마웠어. 고생 많이 시키고 따뜻하게 못 해 줘서 미안해. 빈자리가 너무 크네.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못 했는데, 정말 사랑해"
남편이 허공에 던진 마지막 인사는 목이 메어 자꾸만 끊어졌습니다. 살아서는 이웃을 위해 살고, 떠나면서는 6명에게 새 삶을 선물한 김옥희 씨.
결혼기념일을 하늘에서 맞이하게 된 그녀가 남긴 온기는 우리 사회에 참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세상에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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